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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기묘한 러브레터 - 야도노 카호루

by 생각나무 정원사 2022. 2. 28.

 

#1 야도노 카호루

일본 소설은 제법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책의 인기에 비해 저자의 이름이 낮설었습니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도무지 누군지 알 수가 없는 작가였습니다. 심지어 책을 읽기 전에도 그리고 읽은 후에도 말이지요. 단지 복면작가라는 단어만이 설명란에 적혀 있었습니다. 미스테리물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 책의 띠지에 나오는 것처럼 친구의 실화를 다루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참 궁금하더군요. 심지어 자신의 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파트리트 쥐스킨트도 이 정도는 아닌데 말이지요.

 

 

#2 서간체 소설

서간체 소설을 좋아합니다. 특히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편지를 주고 받는 내용들을 무척 좋아하지요. 편지가 주는 매력이 있지 않습니까. 상대방에게 답장이 오기 전까지는 어떤 말도 할 수 없고 그 사이에 기다림으로 다음의 편지의 답장은 더욱 농후해지지요. 그렇게 편지가 오고 갈 때마다 내용과 감정이 더 깊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특히 요즘처럼 편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그리울 따름입니다. 그런 문장의 주고 받음이 말이지요. 그래서 일까요. 서간체 소설에는 연애에 대한 내용이 제법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연애물이 아닙니다. 적어도 초,중반까지는 옛 사랑에 대한 내용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이 책은 미스테리 입니다. 특히나 흥미로웠던 것은 서간체 소설이 주는 화자의 물리적 거리감이 이 책의 미스터리적인 요소에 스릴러적인 매력을 더 높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잔잔하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도 물리적으로는 여전히 떨어져 있기에 도대체 이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싶은 궁금증은 점점 더 커지더군요.

 

 

 

#3 결혼식 당일 사라진 신부, 30년 만에 닿은 연락

이 책을 소개하는 사이트들이나 책의 표지에 적혀 있는 문장입니다. 편지는 남자로 부터 출발합니다. 남자는 우연히 자신과 사랑하고 결혼하려고 했지만 결혼식 당일에 오지 않은 여성을 30년 만에 SNS에서 발견합니다. 그리고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지요. 그렇게 남자의 편지를 따라 읽어가다 보면 초점은 온통 여자에게 꽂히게 됩니다. 특히 표지와 각종 사이트들도 우리의 시선을 여자에게로 몰아가지요. 그러다보면 이 여자는 도대체 왜 사라졌을까 라는 질문이 머리 속을 맴돌게 됩니다. 그 후로는 주고 받는 모든 편지 속에서 온통 여자의 말에 신경이 곤두서게 되지요.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은 그렇게 독자의 눈을 좁게 만들어 버립니다. 집중하려고 하면 할 수록 뜬 눈이 작아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4 반전 그리고 도대체 왜

중후반에 가면 남자와 여자 둘이 겪어야 했던 성적인 문제들이 등장합니다. 이럴 수도 있구나, 아니 정말 이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의 내용이지요. 그래서 그런 일을 겪어야만 했던 서로가 안타깝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어떤 사건, 혹은 불신, 혹은 사랑이 변했구나 싶어지지요.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독자를 무난하게 안착시키지 않습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초중반까지 극도로 좁아진 시선을 확 열어버리려는 듯한 의도를 느꼈습니다. 결말을 이 곳에 적어내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에둘러 표현하자면 상상도 못한 반전으로 소설은 마무리가 됩니다. 그 내용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도대체 왜 라는 질문에 대한 훌륭한 답변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의 마지막 편지 두편은 두세 번씩 앞으로 다시 넘겨가며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애시당초 반전이라는 것은 맨 마지막에 숨겨두었던 것을 짠하고 보여주기 위해서 애써 앞에서의 정보 노출을 삼가합니다. 그러다 보면 앞의 내용들은 무의미한 내용처럼 느껴지지요. 이 책이 그랬습니다. 마지막 편지들에서 갑자기 폭포처럼 많은 정보가 쏟아집니다. 너무 급작스럽지요. 그러고 나니 앞의 편지들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시선돌리기 혹은 감정을 고조시키는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더군요. 그래서 이 책을 단숨에 읽고 싶다면 앞부분의 조금과 뒷부분의 조금만 읽으면 그만입니다. 그럼에도 간만에 참 흥미롭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주변에 누군가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짧지만 강한 임팩트가 있는 미스터리 도서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