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앨리스 죽이기] 라는 작품은 오래 전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몇 번 시도했던 책이다. 그런데 읽어보면 느낄 수 있듯이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부조리극을 읽는 듯한 정신 없는 문장들이 집중을 방해했기에 초반에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책이 정신 없어서 나를 방해 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미 내가 이 정도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집중력을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다 읽고 나서는 이 책은 너무 매력적인 책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소개해주고 싶을 정도로 재미 있었기 때문이다.
2
고전을 비트는 작품들은 과거에도 많았다. 특히 일본에 이런 시도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대학 시절 백설 공주나 인어 공주와 같은 이야기들을 성인의 관점에서 재해석 하는 글들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당시에도 무척 선정적이면서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충격이 있었다. 그런데 [앨리스 죽이기] 는 단순히 고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성인의 관점을 부여하는 작업을 거치는 작품은 아니었다. 지구에 존재하는 인물들과 앨리스가 사는 이상한 나라의 인물(?)들이 서로의 꿈 속의 아바타라가 되어 각자의 세계 속에서 삶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3
여기에서 부터 이 작품의 흥미로운 점이 등장한다. 누구라도 꿈 속의 아바타라라고 하면 본체를 당연히 지구에 있는 인간으로 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에 대한 개념을 흔들면서 이야기가 뻔하게 흐르도록 두지 않는다. 그리고 아바타라라는 존재도 본체와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닌 존재로 그리면서 누가 누구의 아바타라 인가에 대한 추리가 쉽지 않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누가 누구일까 라는 진지한 의문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때 쯤 도마뱀 '빌'이 헛소리를 지껄여 준다. 그러고 나면 이제는 내가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 기분이다.
4
그런데 중반 이후 부터 잔인한 장면들이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다시 한 번 상기된다. 우리가 익히 알던 앨리스 이야기의 순수성을 현대적 감성으로 풀어내는 줄만 알았던 초반의 분위기가 잔혹한 살인 장면으로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까지 잔혹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사실 들었다. 그런데 이 후에 출판된 [클라라 죽이기], [도로시 죽이기] 를 보면 앨리스는 양호한 것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4부에 해당하는 [팅커벨 죽이기]는 정말 잔혹하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앨리스가 가장 순한 편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5
이야기는 뻔한듯 하면서도 뻔하지 않게 흘러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복잡한 이야기들의 실타래가 하나씩 풀어내는데 그것을 듣는 쾌감이 있다. 평소에도 일본 소설을 많이 읽는데 일본 소설을 읽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큰 장벽이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이름이 있고 그들의 아바타라가 각자 있으니 초반에 더욱 복잡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부분만 잘 넘어가면 이보다더 흥미 진진한 이야기가 없다. 사실 최근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몇 권이나 읽었지만 예전 같은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의 작품을 너무 많이 본 탓 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고마야시 야스미 라는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어 너무 신나는 한 주 였다. 덕분에 지난 한 주 동안 [앨리스 죽이기],[클라라 죽이기],[도로시 죽이기] 를 읽으며 추운 날씨를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또 그 덕분에 수면의 질이 무척이나 떨어졌지만 말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밤에 잠을 안자면서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 책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흥분되는 시간이었다.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션》 책 리뷰: 화성에서 살아남은 과학적 생존 이야기 (6) | 2024.11.08 |
---|---|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줄거리와 작품 해석, 의미 분석 (1) | 2024.11.07 |
헌책방 기담 수집가 - 윤성근 (1) | 2022.09.23 |
기묘한 러브레터 - 야도노 카호루 (0) | 2022.02.28 |
공간의 미래 - 유현준 (0) | 2022.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