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샤 튜더, 나의 정원
저에게 정원이라는 공간을 장래희망으로 만들었던 책입니다. 대학원 때 잠시 쉬고 싶어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집어든 책입니다. 사진이 많고 글이 없어서 집어 들었지요. 하지만 그 내용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사실 대학생 때부터 기숙사를 비롯해서 혼자 살 일이 많았기에 늘 식물을 곁에서 키웠었지요. 하지만 그것을 정원으로 확장시켜볼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애시당초 한국의 주거 형태가 정원이 존재하기 힘드니까요. 그 때 부터 주택에 대한 마음이 커져만 갔습니다. 마당에 이런 저런 화초들과 평생을 지켜볼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졌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1000평이나 되는 타샤 튜더의 정원만큼은 할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2 정신의 구현, 돌봄의 결과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화분을 구매하는 족족 죽인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꽤나 자주 화분을 다시 구입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키워낸 것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손이 망손이라 그렇다고 웃으며 말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뭐든 오래 곁에 두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양육자가 없는 아기가 없듯이, 원예가 없는 정원도 없다.
정원은 언제나 누군가의 정신이 구현된 상태이고,
누군가의 돌봄을 통해 얻은 결과다.
결국 제 방에 있던 식물들이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사라진 이유는 전부 제 돌봄이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제가 그 식물들을 돌볼만한 정신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문제는 식물이 아니라 저였습니다. 잠시 생각해보니 그 때의 저는 정말 여유가 없었던 것 같네요.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흔들리는 상태였지요. 식물이란 단지 자신의 기분을 풀어줄 광대처럼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다들 죽어나갔나 봅니다.
#3 이 책은
그런데 이 책은 정원을 어떻게 하면 더 잘 가꿀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지 않습니다. 어떤 식물을 언제 어떻게 파종해야 멋진 정원이 되는지 알려주는 것도 아니지요. 대신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 치료사인 저자는 정원을 통해 인간의 정신과 감정이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지요. 사람이 정원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정원이 사람을 가꾸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1장에서 소개되는 저자의 할아버지의 사례는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전쟁포로로 생의 바닥까지 갔던 분이 식물을 키우면서 회복되는 이야기는 저자의 주장을 강하게 뒷바침 해주는 경험인 것이 분명하지요. 하지만 단지 이런 개인적인 경험으로 감정적으로 설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학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냅니다. 수감자들이나 비행청소년들이 식물을 키웠을 때 얻게되는 긍정적인 영향을 수치화 해서 보여주지요. 그리고 그런 저자의 주장은 꽤나 설득력 있게 다가 옵니다.
#4 원예 카타르시스
저자는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를 원예 카타르시스 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식물이 아니라 마치 자신을 돌본 듯 정화한 느낌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것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단지 힘들게 노동을 해서 이쁜 결과물을 바라보는 것으로 쾌감을 느끼는 패턴이 아닙니다. 노동 그 자체의 카타르시스이지요. 그런데 그 노동이 원예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원예는 반복적이거든요. 또한 저자는 원예가 반복이기에 자연과 나누는 대화라고도 설명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삶에 리듬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리듬이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변화시켜 주는 것이지요. 앞서 자취 시절 불안했던 제가 만약 식물에 조금 더 열의를 가지고 가꿔주었다면 어쩌면 저는 그 식물의 리듬에 맞게 생활이 변화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식물과 나누는 대화에 즐거워했겠지요.
#5 다시, 정원으로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의 제목입니다. 저자는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단지 식물을 키우는 일을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생에는 돌봄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의 인생, 우리의 공동체, 우리가 기거하는 환경을 형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라고 말하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땅의 창조물임을 상기하라고 조언하지요.
이 책을 읽은 후 아내에게 작은 정원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이사 갈 집에서 내가 식물을 키우며 정원으로 꾸밀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달라고 요구했지요. 아직 현실이 되지 않아서인지 아내는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벌써부터 기대 됩니다. 흙을 사다가 화분에 담고 씨를 심고 물을 주고 기온을 맞추고 비료를 주고 후에 그 식물의 리듬에 같이 화음을 넣는 모습이 말입니다. 안그래도 베란다에라도 작은 정원을 만들고 싶었는데 아내를 설득할 좋은 명분을 얻은 느낌입니다. 음악 감상을 취미로 하는 분들 사이에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음악감상을 제대로 하려면 집부터 바꿔라.' 저에게는 '정원을 가꾸는 삶을 살기 위해서 집부터 바꿔라.'이겠지요.
당장 작은 화분 부터 하나 구입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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