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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편지 - 히가시노 게이고

by 생각나무 정원사 2022. 2. 8.

#1 히가시노 게이고

 

최근 일본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가 중에 한명입니다. 한국에서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로 오를 만큼 인지도가 높은 작가이지요. 그리고 그를 뒤따르는 말은 추리, 미스테리 입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그의 작품을 가지고 만든 영화와 드라마가 많이 있지요. 그래서 저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라고 하면 먼저 미스테리가 떠오릅니다. 무엇보다 너무 어렵지 않아서 좋더군요. 그로인해 비판을 받는 지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미스테리 매니아들은 트릭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이론적으로 납득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트릭은 그렇지 못한가 봅니다. 저야 워낙 그쪽으로는 무지해서 그냥 스토리를 읽는 것에 더 집중합니다. 그래서 그의 글이 나쁘다는 생각은 안해봤습니다. 오히려 좋은 쪽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붙은 작품은 자연스레 손이 가게 됩니다.

 

 

#2 편지

 

그렇게 읽은 책이 편지 입니다. 사전 지식이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초반 부터 강도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것 역시 미스테리물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이내 주인공이 바뀌었습니다. 강도 살인을 저질러 감옥에 간 형을 둔 동생입니다. 이 책의 줄거리는 그의 삶을 추적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사이에 형과의 편지는 주인공의 감정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매체입니다. 힘들게 답장을 하기도 하고, 편지로 인해 면회를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형으로 인해 인생이 무너질 때는 그 편지를 찢어버리거나 아예 답장을 하지 않지요. 극에 치달으면 주소를 가르쳐 주지 않기도 합니다. 형으로서는 동생에게 내밀 수 있는 유일한 손길이지만 동생은 그 손길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동생으로서는 형의 잘못으로 인해 삶이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글을 읽은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정말 저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았으니 말입니다. 

 

 

 

#3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영화 [볼링 포 콜롬바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있습니다. 1999년 4월 콜럼바인고등학교의 졸업반 학생 두 명이 별 다른 이유 없이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같은 학교 학생과 교사 13명을 죽이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자살한 사건이지요.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한 문장으로 정리해 봐도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오로지 사건의 가해자에게만 쏠려 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 중의 한 명의 어머니가 쓴 책이 있습니다. 바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라는 책이지요. 이 책의 내용은 뒤로하고서라도 이 책으로 인해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범죄자의 가족입니다. 우리는 매체를 통해 수많은 범죄를 마주합니다. 그런데 그들도 분명 가족이 있을 것이고 그 가족들이 그 범죄 이 후에 어떻게 살게 될 것인지는 관심가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옥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최근 오스템임플란트의 자금을 횡령한 사건이 사회에 대단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횡령한 직원의 아버지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의 그런 선택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살 자신이 없으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런 범죄자의 가족들에게 친근하게 대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책의 4장에서 주인공의 직장 사장이 동일한 지점을 설명합니다. 주변 사람들 조차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하기에 역차별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4 관계의 실타래

 

왜 이렇게 풀기 어려운 문제일까요. 바로 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라는 관계, 친구, 사회, 지인이라는 관계 등 우리는 수많은 관계로 얽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가 문제가 발생하면 이 모든 관계들에 충격이 가해지지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두려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 역시 그런 지점을 잘 보여주지요. 주인공이 겪는 학교에서의 따돌림, 아르바이트에서의 해고, 밴드에서의 퇴출, 애인 부모의 반대, 직장에서의 좌천.....하나 하나 보고 있자면 정말 가슴이 아파옵니다. 그가 겪는 수많은 문제가 엄청나서가 아닙니다. 그 문제를 도무지 풀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형과의 관계 때문이지요. 아마 평생을 따라다닐 그 관계 말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먹먹합니다. 5장 초반에 아이가 따돌림을 당하는 장면에 가서는 답답하기 까지 합니다. 그리고 결국 이 소설도 그 실타래를 풀지 못하지요. 가족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가도 왜 이래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꿈꾸고 개천에서 용이나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야 말로 보여줍니다. 우리가 노력하고 매진하며 이루어내려고 [이매진]하지만 결국 우리의 머리 속에서 [이매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말이지요. 현실은 참으로 냉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