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나간 과거
물건을 무척 아껴쓰는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스마트폰이 7대 정도 서랍에 있습니다. 고장이라도 나야 미련없이 버릴텐데 이 녀석들은 전원도 잘 켜지고 딱히 문제가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애물단지로 전락했습니다.
그렇다고 생생한 것을 가만히 처박아 두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아서 이런 저런 역할들을 맡기고는 합니다. 어떤 기기는 거실 음악용, 어떤 기기는 작업실 음악용 등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용도명에서 부터 알 수 있듯이 거의 무의미합니다. 사실 요즘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블루투스로 여기저기서 음악 들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정작 구색을 맞춰놓아도 실제로 사용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또 성격상 기기 배터리가 없는 모습은 참질 못합니다. 꾸준하게 충전해주고 또 사용 안해서 방전되고, 또 충전해주고 다시 방전되고...이런 바보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지요. 스스로 바보 같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행동을 하는 이유를 사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스스로 '미련'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이미 무용한데, 지나간 과거인데, 여전히 생생해보이니 유용한줄 압니다. 여전히 현재인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보았지만 딱히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미련이 남은 것일 뿐이라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2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오늘 아침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중에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를 읽었습니다. 이 글은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여성이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이라 말해야할지 몰라서 주저하다가 스쳐지나간 남자의 독백입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여성은 스쳐지나간지 한참이 되었습니다.
몇 걸음인가 걷고 나서 뒤돌아보았을 때, 그녀의 모습은 이미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 때부터 남자는 여성에게 무엇이라 말을 걸었어야 했는지 혼자 이야기를 준비합니다. 그 이야기가 바로 소설의 제목인 것이지요. 그런데 그 짧은 글이 너무 매력적인 글이라서 인터넷에서 부분을 읽고 나서 바로 주문해서 소장하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좋다고 느껴졌는고 하니 앞서 말한 미련이라는 녀석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나는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꺼내보았어야 했던 것이다.
가정법과거형 문장. 바로 미련이지요. 지나간 사랑들은 서랍에 쌓이는 스마트폰처럼 이제 무용하고 과거인데, 여전히 유용하고 현재인 것처럼 기억을 더듬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녀들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건냈어야 했을까? 그리고 지금 나는 100퍼센트의 사람과 살고 있는가?
#3 선택의 딜레마
사람은 늘 언제나 선택을 하지요. 시간과 재화, 그리고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동시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게 선택을 하고 나면 늘 선택하지 않은 다른 부분에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간단하게는 외식을 어떤 것을 할까, 어떤 옷을 살까 같은 소소한 것도 있겠지만, 심각하게는 내 배우자는 나에게 100퍼센트일까 같은 질문으로도 확장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미련이 많은 타입인 것 같습니다. 과거를 곱씹는 것도 좋아합니다. 친절한 금자씨처럼 잘 드러내지 않지만 복수심을 품기도 합니다. 와신상담이라고도 하지요. 그러다보니 매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나에게 최선일까? 나에게 어떤 선택을 할 때 기준은 언제나 이것이었습니다. "최선" 그런데 이 소설은 저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게 합니다.
"왜 100퍼센트가 아닌 최선으로 만족하지?"
그런 생각이 들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내 직업은 나에게 100퍼센트인가. 내 아내는 나에게 100퍼센트인가. 위험한 생각일 수도 철없는 생각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세상에 100퍼센트가 어디있느냐고 묻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정말 바이러스 때문에 잊혀진 것이라면, 사실 나는 이미 100퍼센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면...스쳐 지나간 사람들 속에 100퍼센트의 사랑이 있었다면...가정법과거입니다. 미련이지요.
그리고 이런 생각을 계속하다보니 허무함이 밀려옵니다. 참 삶이란 별거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100퍼센트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대충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야 지금의 선택들이 아직까지는 꽤나 맘에 듭니다. 하지만 100퍼센트냐고 묻는다면 도무지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짧은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너의 사랑은 100퍼센트가 아닐 수 있다일까요? 아니면 참 어리석고 허무한 것이 인생이다 인가요?
#4 미련
문학전문가가 아니라서 글의 내용을 잘 파악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적어도 이 짧은 몇 장의 글을 통해 한가지 슬며시 가면으로 가려두었던 감정이 올라옵니다.
미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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