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한도전
저에게 무한도전이라고 하면 늘 예능프로그램이 떠오릅니다.
그만큼 무한도전이라는 단어는 이미 우리 시대에서는 고유명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는 부정적인 느낌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가능하면 무한도전이라는 이름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책 제목으로는 더 나은 편이 아닐까 했기 때문이었지요.
더욱이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하면 추리소설 아닌가?'라며 살인과 긴장감이 풍기는 그의 이름과
무한도전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목만 봐서는 도무지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2 불혹의 나이
그러나 띠지에 있는 문구에 끌려 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불혹의 나이에 스노보드를 시작했다. 푹 빠져버렸다.
이제 저도 불혹을 얼마 남기지 않았기에 불혹의 나이라는 단어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요즘 저의 고민은 내가 푹 빠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취미도, 좋아하는 것도, 좋아하는 음식도 없습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 삶이 그냥 저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구나 싶은 무기력감이 온몸을 감쌀 때도 있습니다.
인생이 그냥 이렇게 혼자 있다가 혼자 가는 것이구나 싶은 염세주의에 빠지기도 하지요.
그래서 다짐한 것이 '새해에는 무언가 빠지고 싶다. 또는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새롭게 시작하고 빠져버렸다는 문장을 읽게 되었습이다.
그는 이미 작가로서 대단한 성취를 거두었을 텐데 왜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왜 사람은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하는 것일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기도 했지요.
저 역시 사람이라서 자꾸만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섣부른 대답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찾으면서 왜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 생깁니다.
'나는 왜 시작하지 않는가. 아니 시작은 하더라도 왜 빠지지 않는가?'
제 삶에 가장 큰 아쉬움을 살펴보면 푹빠지는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3 분투
두번째 챕터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챕터의 소제목은 <아저씨 스노보더, 분투 중> 입니다. 여기에서 제 눈을 끄는 단어는 분투였습니다.
분투 -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우거나 노력함
개인적으로 어떤 일에 있는 힘을 다해 해본 적이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일에 어느 정도 재미를 느끼려면 고지에 올라서 봐야하는데 고지에 올라서기 전에 내려가거나
혹은 고지라고 부를 수 없는 낮은 언덕을 오르는 것만 해오지는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분투한다고 합니다.
엎어지고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늦은 나이에 시작해서 창피함도 있었을 텐데 왜 인지 스노보드에 분투합니다.
그는 언젠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분투합니다.
#4 첫 단추 끼우기
사실 책 자체는 그의 소설보다는 별로 흥미롭지 않았습니다.
어찌보면 그냥 저냥 스노보드를 배우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의미있는 이유는 한 남자가 히가시노 게이고이며 그의 나이가 불혹을 넘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언젠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있습니다.
아니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분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분투해야겠습니다.
첫 단추라도 끼워봐야겠습니다.
그러면 두번째 단추도 끼울지 또 누가 알겠습니까?
이것을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도 이건 좀 궁금하기도 하겠다고 생각한다.
스노보드가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재미있는 일이라면 아마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나를 스노보드에 이토록 빠져들게 한 것은 '향상'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못한 것을 오늘은 해냈다라는 게 기뻐서 견딜 수 없다.
그렇게 세번째 단추도 끼울지 또 누가 알겠습니까?
적어도 오늘은 어제보다는 나으니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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